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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마가복음 11:27-33 예수님의 권위를 질문하다

by Logos 2025.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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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에 대한 질문, 구속을 향한 도전

마가복음 11장 27절부터 33절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종교 지도자들과 논쟁을 벌이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난주간 중반에 해당하는 이 본문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지혜로운 대응을 보여줍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논리 싸움이 아닌,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앞두고 종교 권력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구속사적 갈등의 한 장면입니다. 권위에 대한 질문은 결국 예수님이 누구신가, 그분의 사역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에 대한 신학적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에게 직접적인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되묻는 방식으로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십니다. 이 대화는 예수님의 권위가 하늘로부터 왔다는 진리를 드러내며, 동시에 사람의 인정을 받는 종교 구조가 얼마나 무기력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폭로합니다. 이 본문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신적 정체성과 그분이 이루시는 구속사의 본질을 조명합니다.

27절: "또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예수님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이 반복적 방문은 그분의 사명이 단순히 성 밖에서 사람들을 고치고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인 성전과 그 안의 권위 구조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성전은 당시 유대 사회의 종교적 중심지였으며, 제사장과 서기관, 장로들이 모여있는 곳이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유대 종교 체계를 대표하는 자들로,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역에 가장 큰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본문에 등장하는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는 산헤드린을 구성하는 주요 세력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그의 권위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그를 공적으로 검증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진리 탐구가 아닌,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의도였습니다.

칼빈은 이 장면을 주해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위협받았다고 느끼는 순간, 그 어떤 진리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드러냈다고 지적합니다. 즉, 그들은 외형적 권위는 가졌지만, 참된 하나님의 권위를 분별하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28절: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성전을 정결케 하며 기적을 행하는지를 묻습니다. 이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과 정체성 전체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이런 일’이란 앞서 있었던 성전 정결 사건과 무화과나무 저주, 그리고 계속된 예루살렘에서의 활동을 포함하는 포괄적 표현입니다.

그들의 질문은 권위의 출처에 대한 것입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라삐나 예언자, 제사장은 반드시 어떤 정통한 권위로부터 안수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어떤 제도적 배경도 없이,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행하셨습니다. 이는 기존 종교 체계의 정통성과 구조를 뒤흔드는 일이며, 그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도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늘로부터 온 권위, 곧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주어진 권위였습니다. 이는 요한복음 5장과 10장 등에서 분명히 밝히는 바와 같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권세를 주셨다는 선언과 일치합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수님의 권위를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 성부로부터 받은 신적 권위로 해석하면서, 이 장면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사역의 정통성을 강조하였습니다.

29-3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예수님은 반문으로 대응하십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왔는지, 사람으로부터 왔는지를 묻는 이 질문은 매우 전략적인 질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존경받는 예언자였고, 그의 사역은 회개를 촉구하며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요한으로부터 세례받았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그들의 권위에 질문을 돌려주는 동시에,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십니다.

요한의 사역이 하늘로부터 왔다면, 그가 증언한 예수님 역시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여야 하며, 그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반대로 사람으로부터 왔다고 한다면, 요한을 예언자로 믿었던 백성들의 분노를 살 것이기에, 그들은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단순한 수사적 전략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 종교적 위선을 폭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31-32절: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김으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여"

종교 지도자들은 스스로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만일 요한의 권위가 하늘로부터 왔다고 인정하면, 왜 그들이 요한을 믿지 않았는지 설명해야 하며, 동시에 그가 증언한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반대로, 요한의 권위를 부정하면, 백성들의 반발이 두려운 것입니다.

이 장면은 그들이 진리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사람의 반응을 두려워하며 스스로의 이익과 지위를 지키는 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진리를 부정하면서도 대중의 눈을 의식하는 그들의 모습은, 얼마나 그들의 권위가 사람 앞에서 세워진 것인지를 드러냅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 장면에서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자’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의 대비를 강조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진리는 사람의 인정을 기다리지 않으며, 참된 권위는 하나님 앞에서만 확정되는 것임을 드러냅니다. 칼빈은 이 구절을 통해, 인간의 판단과 두려움은 결국 진리를 외면하게 만든다고 지적하였습니다.

33절: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결국 그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라고 대답합니다. 이는 회피의 말이며, 동시에 스스로 진리를 판단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그들도 대답하지 않으니 자신도 그들에게 대답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그들의 불신앙과 위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적 침묵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멈추는 이 지점은 구속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는 심판, 하나님의 계시가 거절당할 때 그들에게 더 이상 진리가 허락되지 않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는 이사야 6장의 말씀처럼, 들을 귀가 닫히고 마음이 둔하여져 결국 심판에 이르게 되는 영적 무감각의 상태입니다.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은 이 장면을 두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위선 앞에서 침묵하셨다는 사실은 그분의 심판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를 묵묵히 거두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절제라고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한 자들에게 더 이상 계시가 주어지지 않는 순간, 그것은 곧 심판의 시작이었습니다.

전체 결론

마가복음 11장 27-33절은 고난주간 속에서 예수님의 권위가 어떻게 종교 권력과 충돌하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위선이 어떻게 대조되는지를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 하늘의 권위이며, 이는 제도적 인증이나 인간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의 눈치를 보며 진리를 회피했지만, 예수님은 침묵 속에서 심판의 선언을 이루셨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로 하여금 참된 권위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며, 사람의 인정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믿음의 삶을 결단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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