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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대림절 성경 묵상] 누가복음 2장 14절 “하늘의 영광, 땅의 평화”

by Logos 2025.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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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영광, 땅의 평화”

본문: 누가복음 2장 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개역개정)

 

 

1. 서론 — 하늘과 땅이 만난 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림절의 절정은 바로 이 말씀 속에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다시 연결된 밤,
그 어둡고 조용한 들판 위에서 천사들이 노래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 한 구절은 성탄의 신학 전체를 요약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평화가 한 자리에 만나는 순간,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사건입니다.

대림절은 단순히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절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 속으로 직접 들어오셔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고,
죄로 단절된 인류와 화목을 이루시는 구속의 사건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응답하는 그 자리 —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서 계십니다.

 

2.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 구속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

천사들의 찬송은 먼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으로 시작합니다.
성탄의 영광은 인간의 공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적인 구속의 행위에서 비롯됩니다.

창세 이래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은 죄와 죽음의 사슬 아래 갇혀 있었습니다.
율법도, 제사도, 철학도, 도덕도 인간을 근본적으로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친히 그 한계를 아시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언제나 구원 속에서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도,
엘리야가 불로 응답받을 때도,
결국 그 모든 일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가능 속에서 가능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의 영광은 왕궁이 아닌 마구간에서 빛났습니다.
이것이 구속사의 역설입니다.

세상은 높음 속에서 영광을 찾지만,
하나님은 낮아짐 속에서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의 연약함 속에 스며든 사건입니다.
그 영광은 눈부신 금빛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눈물 속에서 빛나는 사랑의 영광입니다.

 

3.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 평화의 복음

“평화”(εἰρήνη, eirēnē)라는 단어는 단순한 전쟁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샬롬(שָׁלוֹם)”이라 하여,
온전함, 조화, 화목, 회복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피조세계가
본래의 조화를 회복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이 샬롬의 회복을 위한 사건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인간에게
그리스도는 화목의 중보자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벽을 허무셨고,
부활로 죽음의 사슬을 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시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 2:14)

그리스도의 평화는 세상이 주는 일시적 안녕이 아니라,
영원한 화해와 내면의 평안입니다.
이 평화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죄가 해결되지 않은 평화는 일시적 착각일 뿐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과한 평화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하늘의 샬롬입니다.

천사들은 바로 그 평화를 선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늘의 영광이 땅으로 흘러내린 사건이며,
그로 인해 땅 위의 평화가 시작되었습니다.

 

4.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 은혜의 선택

본문은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말합니다.
이 평화는 모든 사람에게 자동적으로 주어진 평화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자, 곧 그분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임하는 평화입니다.

여기서 “기뻐하신”이라는 말은 헬라어 eudokia(εὐδοκία)로,
‘하나님의 선한 뜻, 호의, 은총’을 뜻합니다.
즉, 이 평화는 인간의 자격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분은 세상의 강한 자들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낮고 가난한 자들, 목자들, 들판에서 양을 치던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먼저 평화의 소식을 들려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방향성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인간의 자랑이 아니라,
겸손한 믿음 속에서 발견됩니다.
대림절의 신앙은 이 겸손함을 회복하는 신앙입니다.
그분의 평화는 교만한 심령에 머물지 않습니다.
오직 낮은 마음, 열려 있는 영혼 위에 임합니다.

 

5. 하늘의 노래, 땅의 응답 — 대림절의 신학적 완성

하늘의 천사들이 찬송을 부르고,
땅의 목자들이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하늘과 땅이 다시 연결됩니다.
그것이 바로 대림절의 신학적 의미입니다.

창세 이후 인간은 하늘과의 관계가 끊어진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하늘의 문이 다시 열리고,
땅이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림절은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의 절정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단지 한 아기의 출생이 아니라,
창조와 구속이 다시 이어지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절망 속에 있을 때 하늘을 여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하늘의 찬양은 단지 과거의 천사들의 노래가 아니라,
오늘도 예배 속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고,
그 영광을 믿는 자에게 평화가 임합니다.

 

6. 대림절 신앙의 실천 — 영광과 평화의 통로가 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기 위한 것’입니다.

천사들이 외친 이 말씀은
오늘 교회와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에 평화를 전하는 것.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란,
우리의 삶이 하나님 중심으로 재정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배는 단지 주일의 행위가 아니라,
삶 전체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일터에서 정직하게 일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감사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바로 영광의 예배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의 삶은 반드시 평화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평화를 만드는 자가 될 때,
그리스도의 탄생은 오늘도 현실이 됩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평화는 말로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희생으로 증명되는 복음의 열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평화를 이루셨듯,
우리도 세상 속에서 사랑과 용서로 그 평화를 드러내야 합니다.
이것이 대림절의 영성입니다.
빛으로 오신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을 먼저 켜는 사람입니다.

 

7. 결론 — 영광과 평화가 만나는 자리

성도 여러분,
하늘의 영광과 땅의 평화는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질 때,
그 영광은 반드시 사람들 속에 평화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이 두 세계를 하나로 묶으셨습니다.
그분 안에서 하늘과 땅, 하나님과 인간, 영광과 평화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탄은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의 평화로 번역된 사건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는 평화가 되는 통로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것이 대림절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마치는 기도

주님,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땅의 평화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시고,
무너진 관계를 회복시키소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시고,
세상 속에서 평화의 향기가 되게 하소서.
대림절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신 주님,
그 빛이 우리를 통해 흘러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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