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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강림절 묵상] 마태복음 1장 23절 임마누엘 하나님

by Logos 2025.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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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본문: 마태복음 1장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개역개정)

 

1.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순간

대림절은 ‘하나님이 세상 속으로 들어오신 사건’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이 땅에 닿은 순간, 곧 신성과 인성이 하나로 만난 구속사의 중심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 안에는 성경 전체의 메시지가 농축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하시기 위한 여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인간과 함께 거하시며 걸으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인간은 그분의 임재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때부터 인류의 모든 종교적 몸부림은 ‘잃어버린 임재’를 다시 찾으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그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분이 길이 되어 오셨고, 생명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분이 임마누엘, 곧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오신 것입니다.
대림절은 바로 이 신비한 ‘내려오심’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2. 예언의 성취, 구속사의 흐름 속에서

마태복음 1장 23절은 단순히 아기 예수의 탄생을 묘사한 구절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7장 14절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시대, 남유다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연합 공격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왕은 세상의 힘을 의지했지만,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징조를 통해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신다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단지 정치적 구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근본적으로 회복시키는 더 큰 구원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 예언이 7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예언의 성취는 곧 하나님의 신실함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잊지 않으십니다.
대림절은 이 언약의 신실함을 다시 확인하는 절기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라는 말씀은 단지 기적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불가능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늘 인간의 불가능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몸에서도 생명을 주셨고,
광야의 메마른 땅에서도 만나를 내리셨으며,
이제는 죄로 죽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내어 새 생명을 일으키셨습니다.
이것이 대림절이 전하는 복음입니다.

 

3. 임마누엘, ‘함께 계심’의 신학

“임마누엘”은 단순히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신다는 감정적 표현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육신의 교리, 즉 하나님이 실제로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신학적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멀리서 구원을 외치지 않으시고,
인간의 살과 피를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이를 이렇게 선언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여기서 “거하시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스케노오(σκηνόω),
즉 ‘장막을 치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장막에 거하셨듯,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함께 거하십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께 다가가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다가오신 사건을 믿는 신앙입니다.
대림절은 그 임재의 신비를 되새기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하늘 보좌에서 내려오셨고,
우리의 낮고 누추한 자리까지 오셨습니다.
그분은 고통 속에 있는 자와 함께 하시며,
눈물 흘리는 자 곁에 서 계십니다.
“임마누엘”의 복음은,
하나님이 고통을 피하지 않으시고 함께 하신다는 선언입니다.

 

4.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약속의 깊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은 세 가지 차원을 가집니다.

첫째, 구속사적 함께 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자신의 백성과 함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약속하셨고,
모세에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율법 아래 있는 백성이 아니라,
임마누엘 안에서 자유를 얻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둘째, 현재적 함께 하심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며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단지 위로의 말이 아니라, 성령의 내주를 통한 실제적 동행입니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우리 안에, 우리 곁에, 우리 삶의 한복판에 계십니다.
대림절은 이 현재적 임재를 다시 자각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셋째, 종말적 함께 하심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장, 요한계시록 21장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임마누엘의 약속은 종말에 완전히 성취됩니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와 영원히 함께 거하실 날,
그것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는 재림의 날입니다.

대림절은 바로 이 세 차원의 “함께 하심”을 기억하게 합니다.
과거의 오심을 기뻐하고, 현재의 임재를 느끼며,
미래의 완성을 소망하는 절기—그것이 대림절입니다.

 

5. 임마누엘의 복음, 우리의 위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말씀보다 더 큰 위로는 없습니다.
이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사람들은 더 외로워집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언제나 한 가지 확신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의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상처 속에서도,
그분은 그 상처를 함께 지고 계십니다.
성육신의 주님은 우리의 기쁨뿐 아니라,
우리의 눈물도 함께 느끼십니다.

대림절은 감정적 낭만의 계절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실제로 세상의 고통 속으로 들어오신 계절입니다.
그분은 어둠 속에서 빛으로 오셨고,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문을 여셨습니다.
임마누엘의 복음은,
고난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이 여전히 함께하신다는 확신입니다.

 

6. ‘임마누엘 신앙’으로 사는 대림절

이제 우리는 “임마누엘”의 이름을 단지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살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우리 또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함께해야 합니다.
대림절의 빛은 교회 안에서만 머무는 빛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흘러나가는 사랑의 빛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이웃과 함께 울 수 있고,
세상 속에서 함께 아파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대림절의 신앙은 고립된 신앙이 아니라,
동행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은,
내가 타인과 함께 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7. 결론 — 임마누엘, 대림절의 중심

대림절의 복음은 단 하나의 이름으로 요약됩니다.
임마누엘.
이 이름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 전체를 요약하는 선언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이 인간의 세계 안으로 들어오신 사건이며,
그분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이 인간의 죄와 죽음을 이기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재림은 하나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완성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대림절에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임마누엘의 주님,
나의 어둠 속에 오셔서 빛이 되어 주소서.
나의 두려움 속에 오셔서 평안이 되어 주소서.
나의 고독 속에 오셔서 동행이 되어 주소서.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이 복음으로
다시 살아가게 하소서.”

 

임마누엘—이 한마디가 대림절의 시작이요, 완성입니다.
그 이름 안에서 우리는 위로를 얻고,
그 이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오늘, 바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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