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구원하시려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3장 17절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 대림절, 구속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
대림절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사건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성탄은 그 기다림의 결실이지만, 그보다 깊은 차원에서 보면 구속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타락 이후 끊임없는 단절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채, 인간은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죄는 인간의 본성을 왜곡시켰고, 그 결과 모든 인류는 심판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이미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고(창 3:15),
그 약속은 오랜 세월의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드러나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완전하게 실현되었습니다.
대림절은 바로 이 구속사의 약속이 현실이 된 순간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요한복음 3장 17절은 그 오심의 목적을 분명히 밝힙니다.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오심은 심판의 종결이 아니라 구원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보다 구원을 선택하셨고,
진노보다 사랑을 택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하나님의 ‘보내심’ — 구원의 기원(起源)
본문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이 짧은 구절 안에는 복음의 핵심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당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먼저 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내심의 신학(Missio Dei)’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단순한 인간의 도덕적 회복을 위한 사건이 아니라,
삼위일체적 구원의 경륜(經綸, Economy of Salvation)의 중심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셨고,
성자는 순종하여 세상 속으로 오셨으며,
성령은 그 구속의 역사를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하십니다.
이 “보내심”은 또한 성육신(Incarnation)의 신비를 포함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은,
신학적으로 “케노시스(κένωσις, 비움)”의 사건입니다.
빌립보서 2장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그리스도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낮은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의 오심은 하나님의 자비가 얼마나 깊은지를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대림절은 이 ‘보내심의 신학’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의 자비와 순종, 그리고 구속의 계획이 한 점에서 교차하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단지 성탄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우리에게 오셨다는 구원의 감격입니다.

3.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 은혜의 경륜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은 이미 심판받아 마땅한 상태였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 아래 있었고, 누구도 스스로를 의롭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으로 시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은혜로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속사의 역설입니다.
율법 아래서라면 세상은 이미 멸망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품으셨습니다.
그분은 진노를 잠시 멈추시고,
그 사랑을 아들의 피로 나타내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은 하나님의 심판과 사랑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3:16)
그리고 그 사랑은 “심판이 아닌 구원”으로 구체화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다시 품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림절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세상의 죄를 드러내기 위한 심판이 아니라,
그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한 희생이었습니다.
그분은 심판자가 아니라 중보자(μεσίτης, Mediator)로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15절은 그분을 “새 언약의 중보자”라 부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충돌하지 않고 화해된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고, 동시에 사랑이 완성된 자리입니다.
따라서 대림절의 빛은 단순한 감정의 따뜻함이 아니라,
은혜가 심판을 이긴 신학적 사건의 빛입니다.
4.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구원의 보편성과 개인성
예수님의 오심의 목적은 명확합니다.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복음의 보편성과 동시에 개인적 구원을 모두 포함합니다.
먼저, 보편성의 측면에서 볼 때
예수님은 유대인만의 구주가 아니라, 온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요한복음은 끊임없이 “세상”(κόσμος, kosmos)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특정 민족만이 아니라, 타락한 전 인류를 구원하시려 하셨습니다.
그분의 구원은 인종, 문화, 계급, 시대를 초월합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이 세상 전체를 향해 “예”라고 말씀하신 사건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적 차원의 구원이 있습니다.
세상의 구원은 각 사람의 구원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인류 전체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단지 ‘인류’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대림절의 묵상은 그 사랑의 개인적 실체를 깨닫는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역사적 사건이지만,
그분이 내 마음에 오시기 전까지는 여전히 나와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대림절은 단순한 ‘과거의 기다림’이 아니라,
내 안에서 새롭게 임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영적 현재입니다.
성탄은 단지 Bethlehem의 구유가 아니라,
우리 마음 속 구유에서 다시 태어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5. 구속의 신학 — 성육신에서 십자가, 그리고 부활로
요한복음 3장 17절은 한 구절이지만, 그 안에는 구속사 전체의 흐름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성육신)은 구속의 시작이며,
그분의 죽음(십자가)은 구속의 절정이며,
그분의 부활은 구속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단지 도덕적 회복이 아니라,
존재론적 회복, 즉 인간의 본질이 새롭게 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를 입으심으로,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직접 감싸 안으셨습니다.
그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연합함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이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의 교리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그 성육신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이유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고통을 대신 느끼셨고,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라는 말씀은
십자가의 피로 가능해진 속죄의 은혜를 말합니다.
부활은 그 구속의 완성입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구원이 실제로 완성되었음을 증명합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일어나셨기에,
우리의 구원도 살아 있습니다.
따라서 대림절의 기다림은 단지 탄생의 기다림이 아니라,
부활의 완성을 기다리는 믿음의 행진입니다.
6. 대림절의 신앙 — 사랑 안에서 심판을 넘어
대림절의 핵심은 ‘기다림’이지만,
그 기다림의 본질은 ‘사랑의 기다림’입니다.
우리는 심판을 두려워하며 기다리는 자들이 아니라,
사랑을 확신하며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기에,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 사랑은 단지 감정적 사랑이 아니라,
언약적 사랑(헤세드, חֶסֶד)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끝까지 지키셨고,
그 약속의 절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입니다.
따라서 대림절의 신앙은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옮겨지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심판받을 자에서, 구원받은 자로,
두려움의 피조물에서, 사랑의 자녀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 3장 17절의 복음입니다.
이 사랑을 믿는 자는 더 이상 세상을 절망으로 보지 않습니다.
대림절의 빛은 세상의 어둠보다 강합니다.
그 빛은 절망을 꿰뚫고,
모든 죄인을 다시 소망의 자리로 불러냅니다.
7. 결론 — 대림절, 구속의 완성을 기다리는 시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이 대림절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을 사랑하시며,
그 사랑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오셨고,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며,
장차 다시 오실 것입니다.
대림절은 바로 그 세 번의 오심을 기억하며 사는 절기입니다.
과거의 오심을 기뻐하고,
현재의 임재를 누리며,
미래의 재림을 소망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여, 이제 내 안에 오소서.
세상을 심판이 아니라 구원으로 품으신 주님,
그 사랑으로 나를 새롭게 하소서.”
대림절은 구속의 시작이자 완성을 향한 여정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의 사랑이 시간 속에 새겨진 증거이며,
그분의 다시 오심은 그 사랑이 영원히 완성될 약속입니다.
이 절기에, 그 사랑의 빛으로 다시 깨어나십시오.
그 빛은 어둠을 이기며,
그 구원은 세상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대림절(강림절)에 묵상하면 좋은 성경구절 5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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